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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거닐다/뜯어보기

영화 식객 리뷰

11월, 밤 늦게 추워죽겠는데 갈데가 없어서 선택한 곳이 영화관이었다.

 

마침 이 영화가 국산 만화의 영화화라는 의미에서 문화콘텐츠 쪽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어서,

한번쯤 봐두면 좋겠다는 생각에 좀처럼 영화관을 찾지 않는 내가 보게 되었다.

 

참 아쉬운 건 내가 허영만 씨의 원작 만화를 보지 않아서, 이 두 매체의 비교 자체가 불가능했달까.

그래도, 만화책을 좀처럼 보지 않는 내가 유일하게 본 요리 만화라는게 '미스터 초밥왕'이라

그저 '요리'를 표현하는 방법 정도만을 겨우 비교해가며 볼 수 있었다.

 

원체 TV도 안 보고, 연예계에도 딱히 관심이 없으니,

주연으로 나온 삼인방은 거의 모른다고 해야 할 수준의 배우들이었으나, 다들 연기는 굉장했던 것 같다.

게다가 원작 캐릭터하고도 무척 매치가 잘 되었던 듯 하고.

이건 뭐 거의 실사판 수준...

 

그 무엇보다도, 내가 혼자 요리를 해보며 느끼는 거지만,

이게 일단 폼이 잡혀야 뭘 하는데, 요리하려는 폼 하나는 다들 제대로 잡고 있었다.

특히 마지막의 ... 그 뭐더라, 소 매달아놓고 고기 떼는 장면;;;

그건 도저히 대역이 들어갈 틈이 없어보였는데...

나중에 홈페이지 들어가서 보니, 실제 그 두 배우가 영화의 연기를 위해 정식 과정을 수료했다고 한다.

 

영화에는 우리 나라의 전통궁중음식, 서민음식이 고루 표현되고 있었는데,

어느 쪽의 우세 없이 둘다 평등한 위치에서 적절히 관객을 자극할 수 있게 표현되어 있다는 점이 좋았다.

관객은, 요리 대회의 화려한 궁중음식을 보고 우리 전통 음식에 대한 호기심을 느끼면서도,

가마에 넣었다 꺼낸 뜨거운 삽등 위에 구워먹는 삼겹살을 보고

그 호기심을 훨씬 넘어서는 그리움으로 군침을 흘렸을 것이리라.

 

다만 마지막 결말 부분 처리에서, 한국인 심사위원들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던 육개장의 의미를

일본 사람이 오히려 먼저 이해하여 한국인들을 주눅들게 하는 것이 좀 마음에 걸렸다.

일본인이 그랬기 때문이 아니라, 정말 우리 나라 사람들은,

우리 나라를 대표하여 요리를 심사한다는 사람들은 저 정도로밖에 표현될 수 밖에 없는가...라는 생각에서다.

한국인들은 정말 한국의 맛을 모르고 있는 걸까,

우리는 평소에도 그렇게 우리의 맛을 과소평가 내지는 비하하고 있는 것일까.

 

아, 영화를 보다 보니, 1학기때 문화콘텐츠입문 수업 때

참관행사로 갔었던 시카프가 생각나기도 했다.

시카프에서 '요리만화'라는 테마를 걸고 미각, 후각, 청각, 촉각, 시각으로 방을 나누어,

방마다 한일의 요리 관련 만화를 소개했던 것이다.

 

당시 '식객'은 청각의 방에 있었는데,

그 방의 표현방식을 예로 들자면, 만화 한 컷과 스피커가 함께 놓여 있다.

만화 한 컷은 고등어를 굽는 장면이고, 설명에는 '어머니께서 고등어 구워주시는 소리'라고 적혀 있다.

스피커에 귀를 기울이면 그 고등어가 석쇠에 구워지면서 나는 '타타탁' 소리가 들려온다.


확실히 영화인 만큼, 시각적인 요소에 신경을 쓴 흔적도 많이 느껴졌지만,

그보다 나를 자극한 것은 '청각'이었다.

 

'후우후우' 라면 불어 먹는 소리, '서걱서걱' 대파 써는 소리,

찌개가 끓는 냄비가 클로즈업되면 극장 안을 채우는 '보글보글' 끓는 소리,

이런 소리 하나하나가 화면의 화려함보다 더 와닿았던 것 같다.

 

이런 퀄리티 높은 표현방식에 비해

스토리는 극히 단순한 '권선징악'을 정말 극히 단순하게 풀어내고 있었으나,

그 점이 오히려 관객에게 더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지 않았을까 싶었다.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 포터와는 다르게, 이 영화는 기존 작품을 본 적 없는 관객이 훨씬 많았을테니까.

 

한편, 돌아보면 이렇듯 단순에 지나지 않는 스토리를 뭔가 있어보이게 하고 싶었던 모양인지,

사형수 스토리, 해병대 스토리, 노망난 할아버지 설정 등...

뭔가 잡것들을 잔뜩 넣어서, 마치 섞어찌개가 되어버린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특히 가장 억지스럽다고 여겨졌던 부분은 바로 그 노망 난 할아버지다.

이 할아버지가 맨날 밥투정 하던 이유 몇가지가 그대로 최종 결전의 실마리가 되다니,

현실에 기반을 둔 요리만화가 급판타지로 전환되는 부분이었다.  Emerald sword ~

 

마무리를 지으면서, 영화를 보면서 혼자 예상한 게 있다면,

봉주가 망해 자빠지는 부분이, 파렴치한 악당을 벌하는 '징악'의 부분인 만큼,

뭔가 암울한 느낌이 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그 부분을 무게 없이 가볍게 처리해 버리더라.


또한, 캐릭터들의 성격이 상당히 단순한 편이라,

이들을 통해 요리로 '인생'을 담아낼 정도의 깊이 역시 없었으나,

사실 이런 가벼움이야말로 애초의 이 영화의 목표가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한 순간으로 혀를 통해 뇌를 자극하고 사라지는 미각과 같은, 순간의 즐거움을 위한 영화였달까.

 

그래도 매체 전환적인 면에서는 상당히 성공한 작품인 듯 하다.
국내 관객들로 명확히 제한한 타겟팅이 성공했기 때문이기도 하리라.

(엄하게 헐리우드를 노린다니, 한류의 한 물결이 되겠다니, 이렇게 무턱대고 나서지 않은 덕분이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