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 라이더 히비키(2005-2006)


실사판 세일러문에서 턱시도 가면 역을 맡았던 시부에 죠지와, 세일러문 뮤지컬에서 3대 세일러문 역을 맡았던 칸베 미유키가 나온다는 말만 듣고 무턱대고 월영님께 CD를 통째로 빌려와서 보기 시작한 액션 히어로물이다.

이번 학기 시작되자마자 시간날때마다 하나씩 보기 시작했는데, 그동안 어찌나 바빴는지 아직 총 49편의 반도 못 왔다.
어쩌면 이거 다 못보고 일본 가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그런데 이거 정말 신기한 드라마다.
'가면 라이더'인걸 봐서는 아동 대상 액션물임이 분명한데, 히어로들이 싸우는 무기나 주요 소재는 기존 '가면 라이더' 시리즈와 노선을 완전히 달리하고 있다.
이 작품의 히어로들은 보통 히어로들처럼 격투나 칼이나 총 내지는 마법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무려 일본북, 피리, 일렉트릭 기타를 연주하여 싸우고 있는 것이다;;;;;;;;;
어디서 어떻게 나온 발상인 걸까, 신기하기만 하다.

알고보니 이 작품은 원래 '가면 라이더' 시리즈의 하나가 아닌 독자적 히어로물로서 제작되려고 했던 것이, 당초 제작되기로 했던 가면 라이더 시리즈가 펑크나는 바람에 부랴부랴 가면 라이더 시리즈에 편입된 것이라고 한다.(어쩐지 유별나게 노선이 다르더라 =_=)

스토리적으로는, 일본의 전통적인 요괴 및 도깨비들이 나타나서, 이들을 물리치려는 가면 라이더 전사들의 활약상을 담고 있는데, 여기서 주인공인 가면 라이더 히비키라는 캐릭터가 사용하는 무기가 바로 일본북이다.  이 외에도 아지트가 일본 전통 찻집이라거나, 중간중간 휘갈겨쓴 일본한자 컷이 나오는 등, 상당히 일본의 전통을 많이 살려넣으려 노력한 흔적이 보였다. 아니, 이건 흔적 정도가 아니라 애초부터 대놓고 일본인 시청자만을 타겟으로 제한했다는 느낌이다.  이 전략이 오히려 작품을 만드는 제작진의 심적 부담을 덜지 않았을까 싶었다.

후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아동용 액션 히어로물이라는 장르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연령층이 '아침 드라마'로서 즐겨보았다고. 이 역시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뭐, 다양한 연령층에 어필할 수 있었던 건, 이 시리즈의 참신성이 가장 큰 역할을 했으리라 여겨진다.

가면 라이더 시리즈의 흐름에 빗대어 봤을 때, [가면 라이더 히비키]의 가장 큰 특징은 히어로의 극중 역할이다.  보통 히어로물들이 히어로의 삶을 중심으로 스토리를 전개해 나간다면, 히비키는 '아다치 아스무'라는 평범한 소년의, 지극히 평범한 성장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여기서 히어로로 등장하는 가면 라이더는 소년이 동경하는 대상,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니다. 카메라의 초점을 히어로 밖에 둔다는 발상 자체가 상당히 참신한 것이다.

그 외에도 전통적 요소들을 쉬운 권선징악의 스토리 속에 알맞게 녹여넣었을 뿐 아니라, 옴니부스 식 구조 속에 일본인이라면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을 만한 일본적 키워드와 내용과 구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여러 연령층에 호소할 수 있는 무기가 되었으리라. 애당초 세계인의 감정에 호소하고자 하는 전략은 없었으니까, 그저 일본 국내 시청자들에게만 호소력을 얻으면 되었던 것이다.

덕분에, 나같은 해외 시청자는 내년에 일본가면 저 전통 찻집을 한번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무럭무럭 들게 되었다 ... orz


일본은 내가 문화원형 콘텐츠의 활용과 그 구조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참 신기한 나라다.
전통문화를 사람들이 스스럼없이 써먹고, 스스럼없이 즐긴다.  지방 축제를 하면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라도 유카타 정도는 당연히 입어주고, 특별히 우리 문화를 보호하고 계승해야 한다라는 외침이 없어도, 그 문화들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현대사회의 틈 바구니에 안착하여 근심없이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와 함께, 그 전통문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스토리를 내놓더라도 그것이 절대 유치하다거나, 촌스럽다거나, 낡았다는 등의 평가절하를 받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다시 스스로 즐긴다.
이 가면 라이더 히비키라는 작품에서 찾은 그런 요소들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언제나 손님들로 북적이는 전통 찻집, 스스럼없이 북채를 들고 전투지로 나서는 모습이나, 북을 치는 행위로 적을 물리치는 것이 웃겨보이지 않고 오히려 더욱 늠름하게 보이도록 연출된 히어로, 그의 그런 모습을 동경하는 소년, 이 모든 것이 자문화에 대한 긍지와 자신감을 담고 있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우리나라의 전통에 초점을 맞추어 어떤 콘텐츠를 제작하면 반응이 크게 둘로 나뉘어버린다. 닿기엔 너무 먼 당신이라거나, 그다지 볼만한 가치가 없다는 평가절하.
그동안 전통문화를 일반 사람들과 친숙하게 하기 위하여, 또는 전통문화를 쉽게 평가절하해버리는 세간의 인식을 타파하기 위하여 수도 없이 많은 노력이 기울여졌으나, 솔직히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다.  이건, 우리 전통문화콘텐츠에 대한 일상적 관심과, 자발적인 자긍심 없이는 어려운 일이니 말이다.  일단 명절에 한복입는 사람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우리는 우리 문화를 스스로 즐길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것이 일단 가장 문제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전통 문화를 일반인에게 친숙하게 만들려 노력해도, 사람들이 이를 일상으로 받아들여 주질 않으니, 그야말로 어떤 선 하나를 두고 넘어오질 못하는 것이다.

타협의 길을 찾아야 할 것인가, 더 파고들어 골똘히 궁리해야 할 것인가.
한국의 문화원형 콘텐츠 활용에 있어 아직 커다란 과제로 자리하고 있는 부분인 듯 하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