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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거닐다/찾아가기

연극 현자 나탄 후기

 

 

 

레싱이라는 독일 극작가가 쓴 고전 작품...을 한국에서 초연.
...이라지만 기왕 지금의 무대에 올린다면

좀 더 현대인의 정서에 맞춰줄 순 없었을까 하는
많은 아쉬움이 남는 작품.

 


1.

작품 자체는 이건 무대보다는 차라리 그냥 책으로 접하는게 더 나았을 듯.

어쨌거나 무대에 올린 걸 봤으니 무대를 중심으로 평하자면,
전체적으로 '고전을 무대에 올리겠다'는 과한 의욕만이 앞선 무대이지 않았나...

 

 

2.

인터미션 10분 포함 150분에 이르는 긴 러닝타임 중에
앞의 70분은 정말 대재앙이었다.

거의 소설 장미의 이름 도입부를 보는 듯한 기분.

 

정말 쓸데 없다 싶은 장면이 많고, 템포도 느린 데다가

결과적으로는 내용 자체도 도저히 70분이 필요한 내용이 아닌지라

대체 1막 내내 엉덩이가 근질거려서 ...

(결국 같이 간 친구는 1막을 보고 나가 버렸다!)

심지어 장면전환마저도 너무 엉성해서 자꾸만 몰입감이 떨어져서 죽을 맛이었다.

 

실제로 그렇게 만들었을리야 없겠지만

마치 러닝타임을 억지로 맞추기 위한 장면들로 가득 차 있는 느낌이었다.
왜 관객을 시험에 들게 하시나이까 TㅁT...

 

일단 연출가가 나이를 좀 잡수신 분인지

고전을 존중한답시고 퀴퀴한 극본을 그대로 갖고와서 대사만 몇 개 바꾸고 만 것 같은데...

기왕 요즘의 무대에 올리는 거라면,

1막 내용은 10분 정도 분량으로, 자를 데 과감하게 잘라 버리면

전체적으로 빠른 템포로 몰입감을 살릴 수도 있었을 텐데 정말 아쉬운 부분이다.

 

그나마 2막에서 다 죽어가던 템포가 살아나서 망정이지...



3.

내 예상을 뛰어넘는 당황을 안겨 준 것은

1막의 주제와 2막의 주제가 상당히 따로 논다는 것이었다.

 

이것도 참 장미의 이름스러운게...

1막은 종교적 화합의 메시지가 강했고

2막은 얽히고 설킨 출생의 비밀 풀이? ...;;;

 

이게 원작의 문제인지, 무대의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1막의 주제로도, 2막의 주제로도 각각 하나의 기승전결이 있는 극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라

기왕이면 어느 한쪽을 선택해서 집중하면 좀 더 좋지 않았을까 싶었다.

 

 

4.

그 외에도 전반적으로 연출, 조명, 음향이 하나같이

극의 주제나 무게감을 전혀 살려주지 못하고 있었다.

이거 나름 큰 무대에서 하는 작품인데 왜 소극장만도 못한 싼틱한 느낌이 드는 걸까.

 

 

5.
솔직히 말하자면 이 작품은

극본보다는 중견 배우들의 연기를 기대하고 보러 간 면이 큰데
젊은 배우나 나이든 배우나 수준이 비슷하게 평준화가 되어 있는 점이 너무 의아했다.

(반대로 같은 작품에 출연한 배우끼리 너무 연기 차가 나도 문제긴 한데...)

 

오오 님들 연기가 훌륭합니다! 수준도 아니고,

호흡이 착착 맞네! 이런 느낌도 약하고

대사도 많이들 버벅이시고...

발성도, 발음도, 일부러 붙인 듯한 이상한 억양도...
아마추어 극단의 연극을 보는 듯하여 심히 난감했다.

심지어 관록 있고 경력 많은 중견 배우들까지 나왔는데

고작 이 수준의 캐릭터 메이킹이라니... 굉장한 실망감이었다.

배우들이 각 캐릭터의 행동을 완전히 이해하거나 납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고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들 참고 입고 있는 것 같은 느낌.
내가 봤을 때는 이건 거의 연출자의 실패인 것 같다.

 

 

6.

한편으로는 이 작품은 뮤지컬로 각색해서 만들면

오늘 느낀 대부분의 문제가 깔끔하게 해결되지 않을까 싶은 부분도 있다.

 

사실 엄청나게 심오한 내용도 아니라서 ...

지루한 도입 부분을 화려한 노래와 춤으로 꾸미고

길어지는 옛이야기를 극중극으로 바꾸는 식으로 하면

대재앙을 일으킨 문제들이 어떻게든 수습이 되고

심지어 마지막의 해피엔딩도 훨씬 더 극적으로 연출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

 

 

 

 

에휴, 아무튼 전체적으로 아쉬운 공연이었다.

고전을 올리겠다는 그 '의지'가 아까웠던 공연...

 

남한테 추천할 수 있겠냐고 묻는다면,

그 남이 아무리 관대하다고 해도 추천은 못 해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