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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거닐다/찾아가기

2016 막심 므라비차 콘서트 후기: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협연

 

 

 

 

막심 므라비차.

모델 뺨치게 훈훈한 생김새와 무시무시한 속주, 화려한 퍼포먼스로 주목받곤 하지만

나는 무엇보다 이 사람의 앨범을 좋아했다.

익숙한 클래식들이 오케스트라나 전자음악을 깔고

피아노 건반을 통해 버무려지는 그 감각을 너무도 좋아했다.

 

그가 내한 공연을 할 때마다 쫓아다녔다.

일본 유학하던 시절을 빼면 첫 내한 무대부터 거의 매 공연마다 발도장을 찍었다.

어느 해의 공연은 끝나고 관계자가 로비에서 포스터를 나눠주기도 했는데

그 포스터 한 장을 갖겠다고 사람들 틈바구니에 끼여 몸싸움 아닌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올해도 당연히 공연 정보를 접하자마자 바로 조기 예매를 질렀다.

원래는 5월 12일의 서울 공연을 보려 했으나,

당일 다른 스케줄이 있어서 부득이 5월 8일의 고양 아람누리 공연을 예매했다.

 

보니까 올해는 무려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이라기에

더더욱 부푼 마음을 품고 공연날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이 글은, 그 5월 8일의 공연을 보고 와서 쓰는 글이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정말 최악이었다.

대체 무엇을 위한 오케스트라 협연이란 말인가?

 

공연 내내 드는 생각은 한 가지.

내가 지금 남들만큼 이 공연의 감동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이전 공연에서 느꼈던 감동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은,

내 청자로서의 자질이 부족해서라고 믿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내 소망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앵콜곡이 끝나는 순간엔 정말 참담했다.

공연 내내 느꼈던 까닭 모를 불편함이 

근거 충만한 불쾌감으로 완벽히 치환되는 순간이었다.

 

그저 기가 찼다.

아마추어의 공연을 보러 온 것도 아닌데,

어떻게 이 정도 돈을 내고 이런 수준의 공연을 보고 오는 경우가 생길 수 있지?

 

 

 

 

 

그간 막심의 내한 공연은 크게 세 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져 왔다.

 

1. 막심 with his band

2. 막심 솔로 공연

3. 막심 오케스트라 협연

 

밴드 공연은 베이스 볼륨 조절 실패 같이 음향 상태가 핵구린 경우가 아니라면

항상 귀와 눈이 동시에 즐거운 무대였다.

뭘 기대하든 그 이상이었고,

그야말로 크로스오버 피아니스트의 공연다웠다.

 

솔로 공연은 MR 틀고 무대에 덩그러니 놓인 피아노 앞에서

막심 씨 혼자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연주하는 식이지만

그의 컨디션 난조로 실수를 연발하지만 않는다면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공연들이었다.

 

어차피 막심의 피아노 연주를 생으로 들으러,

또는 그의 퍼포먼스를 실시간으로 보러 가는 거니까

다른 부분은 아무래도 좋았다.

 

그런데 이번엔 오케스트라 협연이다.

오케스트라까지 동원할 것 같으면 

최소한의 음악적 품질은 보장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우선 1막은 그냥 잘 들었다.

오케스트라만으로 선보인 첫 곡도 매우 괜찮았고,

막심 씨 컨디션도 이만하면 매우 좋아보였다.

당연하지만 2005년의 아가들과의 협연과는 확실히 다른 수준이었다.

 

(올해 공연이 막심의 첫 오케스트라 협연은 아니다.

 

2005년에도 한 번 서울청소년교향악단과의 협연이 있었다.

그 때의 공연은 몇 번을 다시 생각해 봐도

교향악단의 수준 미달로 돈이 아까운 공연이었다.

전문적으로 레코딩한 CD를 팔아서 돈 버는 대중음악가가

돈 받고 관객 받는 공연에서 협연을 해선 안되는 집단이었다.

 

어쩌면 그래서 더더욱 올해 공연에 기대를 걸어보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이번엔 나름 20년의 경력도 있다는

"서울 내셔널 크로스오버 오케스트라"라는 분들과의 협연이라지 않은가!)

 

컨디션 쾌조를 자랑하는 막심 아저씨의 솔로 연주로 1막을 마무리하고서

인터벌 시간에 2막의 넘버 리스트를 보고 내심 설렜다.

이건 정말 막심의 피아노와 오케스트라의 조화가 돋보일 수 있는 곡들만으로 꽉 차 있지 않은가!

 

 

 

1막에 마지막 두 곡 대신 리스트 솔로가 있었다.

 

 

 

 

 

 

문제는 그 2막부터였다.

어느새부턴가 MR 음향이 메인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거다.

 

아무리 집중해서 들어봐도

지휘자가 이끄는 오케스트라들의 물결과, 막심의 피아노와,

MR의 무감정한 반주가 각자 따로 놀고 있었다.

 

심지어 몇몇 트랙은 아예 MR의 음량이 오케스트라의 음량을 압도해 버려서

오케스트라가 있으나마나한 느낌이었다.

 

이번 공연이 총체적 난국인 것 같다는 개인적인 불안감은

엑소더스, 파가니니, 산왕의 궁전을 지나며 더더욱 증폭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어이는 마지막 곡인 미션 임파서블에서 

이놈의 불안감의 실체를 완벽히 드러내는 대참사가 일어났다.

 

마지막 음 "쾅!"의 박자가 오케스트라와 MR과 막심의 연주가 모두 달랐던 거다.

이건 빼박캔트였다.

공연 내내 저 셋은 각자의 트랙을 틀어놓고 있었던 것이었다.

 

 

 

 

 

우선 이 공연의 품질을 관리하건 담당하건 하는 자들에게 묻고 싶다.

 

아니, 대체 왜!

막심과 오케스트라가 있는데 MR을 또 틀어놓을 필요가 있단 말인가?

 

대체 왜!

오케스트라에 스트링과 퍼커션이 완비되어 있는데 

MR은 MR대로 드럼 비트와 스트링 트랙이 재생되고 있단 말인가?

 

대체 왜!

지휘자가 오케스트라를 앞에 두고 

MR에 맞춰 무상하게 지휘봉을 휘둘러야 한단 말인가?

 

 

 

 

그래, 백 번 양보해서

엑소더스는 사람의 보이스가 들어가니까 그렇다 치자.

그럼 보이스 트랙만 틀던가 하면 될 일이다.

 

아니, 솔직히 아예 MR 트랙을 빼버린들

엑소더스라는 곡의 감동이나 크로스오버 버전의 정체성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심지어 오케스트라에는 퍼커션 주자가 세명이나 있었다.

그들과 그들의 악기들이 앨범에 수록된대로의 전자음은 못 내겠지만

막심 앨범 특유의 드럼 비트를 구현하지 못 할 것도 없다.

심지어 오케스트라만으로 이루어진 공연에서 그들의 실력은 이미 증명된 바다.

 

굳이 드럼 비트가 포함된 MR 재생을 고집해야 할 합리적 이유를

난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비단 엑소더스 뿐 아니라 모든 트랙이 그렇다.

 

 

 

귀로 듣는 것만도 이 모양인데,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 역시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다.

 

지휘자 선생님은 온 정신을 집중해서 MR의 비트를 맞춰가려고 노력한다.

오케스트라는 그 지휘자 선생님의 지휘봉 끝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따라가려고 애쓴다.

근데 막심 아저씨는 그냥 하던대로 자기 류의 연주를 하고 있는 모습이라니.

 

이건 정말 서로들 너무도 안 맞춰 보신 흔적이 역력하지 않은가.

협연의 의미가 없다.

심지어 실내악 구성도 아닌 오케스트라 협연이라니, 맙소사.

 

이렇게 할 거면 차라리 막심 아저씨 혼자 MR 틀고 솔로 공연하는게 낫다.

어차피 막심이라는 이름값 갖고 파는 티켓 아닌가.

솔로 때랑 비교해서 표값도 크게 차이 안 나던데.

 

 

 

 

진심으로 걱정된다.

이건 환불을 받는다 해도 공연 가느라 들인 시간이 아까울 정도의 퀄리티다.

이런 호흡으로, 이런 수준으로 남은 순회공연을 떼지어 도실 생각을 하면 아득하다.

사기꾼 집단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더더구나 재앙인 것은 막심의 셀링 포인트 특성 상 

대부분의 관객들이 막심의 비주얼과 퍼포먼스에만 정신이 팔려

CD 사다가 싸인 받을 생각으로만 가득찬 사람들이라는 거다.

 

그들로 인해 가득 채워지는 현장판매 상자 속 현금다발을 보며

공연 기획사를 비롯한 당사자들은

이런 재앙 수준의 공연을 뽑아내고도 한 치의 부끄러움도 느끼지 못하리라.

 

작년 투첼로스의 공연도 그렇고,

"보는 것"에만 몰입한 나머지 "듣는 것"으로서의 음악의 본질은 

아예 잊어버리고 마는 크로스오버 공연 관객의 한계,

이것이 크로스오버의 장르적 입지를 더욱 위태롭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크로스오버 장르와 막심의 오랜 팬을 자처하며 쓰는 이 냉정한 글이 

MR에 묻혀버린 오케스트라만큼이나 덧없는 외침이 될 현실이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