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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거닐다/찾아가기

에버랜드 워크샵 후기

참 일찍도 올린다 ...
예전부터 올려야지 올려야지 하곤 있었는데, 그동안 하도 바쁘게 달리다보니 이런거 한번 적을 시간 조차 없었구나.

11월 2일부터 3일까지 전국 문화콘텐츠학과 워크샵이 에버랜드에서 있었다.
워크샵과 병행하여 공모전을 했는데, 주제가 "에버랜드 2.0 - 내가 CEO라면"이라는 것이었다.
나도 어영부영 우리 학교 문화콘텐츠학과 대표로 참가하게 됐는데 -

공모전 준비는 생각보다 꽤 힘들었다.
좀 일찍 공지가 내려왔음 좋았을텐데 무려 워크샵 2주전, 그것도 중간고사 기간에 공지가 내려온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일단 1주일은 중간고사로 날려먹고 한 주동안 조원들과 협의하여 준비하게 되었다.

나를 열받게 하는 일들이 꽤 있었다.
마침 공연 스퍼트 기간도 끼어있던 상황이라 나는 양쪽 모두를 책임지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었던 거다.
뭐 내가 애초에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거니까 나 자신에게는 그닥 문제가 없었는데,
터기 쪽에서 이건 아니지 않느냐며 섭섭함을 내비쳤다. 결국 원활한 양립을 위해서 다시 시간 스케쥴을 짜서 새벽과 낮중에는 공모전 준비에, 저녁께에는 터기에 투자하는 방향으로 설정했다. ...그리고 결국 아무런 문제 없이 나는 내게 주어진 일을 다 해냈다. [지금 생각해봐도 신기하긴 하다.]

그 기간동안 밤을 한 이삼일쯤 샜나.
하루는 에버랜드 리뉴얼에 기반이 되는 스토리를 짜느라 밤을 샜는데, 역시 내 쓸데없는 공상력이 빛을 발했다.
'환경'을 테마로 한 뭔가 그럴듯한 스토리가 나온거다.
... 헌데 그러면 뭐하냐 ( '') 기반 스토리부터 다시 설정하는 방향으로 가기엔 우리에게 시간이 너무 없다는 이유로, 그 담날에 아예 초기방향 설정부터 다시 잡아야 했는데 orz(결국 그 스토리는 호평에도 불구하고 바닥으로 가라앉아야 했다.)
또 일적인 면 외에도 같은 일본어과이자 같은 문화콘텐츠학도로 같이 공모전 준비하는 친구가 내 속을 무쟈게 태우는 바람에 스트레스나 엄청 받고 =3 [아직도 마음 같아선 하루 술마시자고 하고 죽여버리고 싶...]

내가 당시 ppt 담당이었기 때문에 다른 조원들이 좀 협력을 해주셔야 했는데, ppt의 기반이 될 사업 제안서가 또 너무 늦게 올라와서 난 얄짤없이 또 밤을 새야 했다. 덕분에 다음날 반시체가 되어 사방을 누비고 다녔다.(그게 아마 핸드폰 수리하러 맡기던 날이었던가)

그치만 어쨌든 각고의 노력 끝에 나온 ppt는 참 훌륭했다. 디자인도 그렇고 구성도 그렇고, 그 안의 내용이 어떻든, 내가 직접 만든 ppt 중 과연 최고였다. 만들던 순간에는 아무 느낌도 생각도 없었는데, 다 만들고 나서 보니 자화자찬이지만 쩝쩝 ... 훌륭했다. 정말. (우리 지도교수님인 문화트렌드탐사 교수님이 '이건 예술이다'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껄껄껄.)
뭐, 또 이 덕분에 나는 평생 가도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았던, 포토샵 펜질법을 익힐 수 있었다. 'ㅡ'!!


다른 조원들이 각자 집에서 골골 자는 사이 난 ppt를 카페에 올리고는 다시 그 다음날을 달렸고, 그동안 최종 정리 제안서와 ppt는 무사히 주최측에 도착했다고 한다.
그 이후도 공연준비와 각종 레포트로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다가, 11월 2일 금요일, 에버랜드로 갔다.
공모전 시상과 문화콘텐츠학 강의, 문화콘텐츠학 관련 유명인사들을 직접 만나서 담소를 나누는 자리가 있었다.

솔직히 이번에 우리가 시간적 조건으로도 너무 불리했던 게 있어서 수상은 기대하지 않았고(그리고 실제 수상하지 못했다) 그저 간만에 에버랜드서 좀 놀고, 강의듣고, 능력자들을 만나기 위해 갔다.

강의는 주로 한국 테마파크의 비전과 국내 여러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테마파크 개발 현황과 컨셉 등에 관련된 내용이었는데, 실제 현장 사람들의 아이디어와 열정이 느껴져서 참 좋았달까. 게다가 이쪽에 관해 많이 연구하신 교수님이 늘어놓는 세계의 테마파크 비교담도 꽤 재미있었다.

다만 그 다음으로 이어진 수상 후보작 발표 ... 이게 정말 큰 실망을 안겨다줬다.

전국 문화콘텐츠학도 대학생들, PPT 센스가 고작 그 정도밖에 안된단 말인가!?
아니 뭐 디자인이야 당신들이 전문 디자인학과 나온게 아니니까 아무래도 좋다고 치자.
근데, 참, 각자 집에서 보는 것도 아니고, 한 넓은 장소에서 다같이 보는 PPT인데 참 이기적으로 만들었더라.
글씨 색깔, 전체적인 구성, 글자 수 ... PPT의 기본매너(KISS 원칙이라고 한다. Keep it Simple and Short, 미국서는 Keep It Simple, Stupid...라고도)를 완전히 무시한게 아닌가.
잘 눈에 띄지 않는 글씨체, 배경색과 채도와 명도가 비슷한 글씨색, 간결명료함이 없는 내용들 ( '')
그나마 한신대학교(...작년에 날 인사동으로 달리게 했던 그 문콘 교수님이 일하는 곳이구나-_-) 팀들이 뭘 좀 알더라. 나머지 대부분의 팀들은 휴우 ...

게다가 수상 후보작이라고는 하나 대부분의 내용이 내가 기대했던 대단한 수준에 못 미쳐서,
정말 우리 팀이 1주일정도만 여유가 더 있었어도 수상했을거라는 생각이 마구마구 들어왔다...만, 생각만 해서 무엇하랴 ( '')

아무튼 발표가 끝나고 돌아와서 밥을 먹고 그동안 고생한 조원들과 폐장시간까지 에버랜드를 달렸다.
밤에 타는 놀이기구란, ... 무섭고 추웠다 orz
다른건 그렇다 쳐도 독수리 요새는 밤이 되니까 완전 어둠의 숲속을 통과하는 기분이라 안전하다는 걸 알면서도 완전히 겁에 질려 있었다 orz
...그것도 그렇지만 후룸라이드를 제일 첫번째로 탄 것도 제대로 미스였다. 초반부터 물을 뒤집어 쓰는 바람에 내내 추위에 떨며 돌아다녀야 했으니까 ( '')

낮에 놀러다닐 땐 몰랐는데, 이놈의 에버랜드도 이젠 꽤 나이를 먹었구나 싶었다.




꽤 효율적으로 계획을 짜서 탈만한 건 다 타고 에버랜드 내 숙소로 돌아오니 10시 쫌 넘었던가.
그 때부터 각 방에 술과 안주가 들어가고 방별로 문화콘텐츠학 내 주제를 정해서 자유롭게 이동하여 강연을 듣는 시간을 1시간쯤 가졌다. 나는 문화콘텐츠 경영/마케팅 주제를 찾아 갔는데, 학교에서 내가 듣는 강의 수업하시는 교수님도 거기 계시고, KBS 피디, 연예계 소속사 사장, 신x 전 매니저 등 뭔 인물들이 그리 많은지 ;;;
우리 쪽 방은 주로 학생들 질문에 저 인물들이 대답하고 조언을 주는 방향으로 1시간이 흘러갔다.

내가 했던 질문은, 내가 이 학문을 파면서 항상 고민하던 것들이다.

1. "이렇게 세일러문을 오랫동안 파고 있는 것이 나의 장래에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가"
물론 그 자리에선 좀 많이 돌리고돌려서 말했지만 ( '') 대충 내 저런 의도를 파악하신 모양인지 내가 원하는 답을 해 주셨다.
그다지 나쁘다고는 볼 수 없으나 그대로 I 자형 인간으로 가기보다는 시야를 많이 길러서 T 자형 인간이 되라고 하셨다. 내가 좋아하는 분야, 잘하는 분야 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 관해서도 여러 지식을 쌓고 두루 능력을 기르라는 것이다. 꼭 내가 모든 것을 직접 익히지 않더라도, 다양한 분야의 인맥을 손에 쥐라고도 하셨다. 현대 사회에서는 T 자형 인간이야말로 사회에서 성공하고 살아남을 수 있다면서.
(그런데 그 자리를 나와서 내 방으로 돌아가는 중에 거기 계셨던 이 분야의 또 다른 선배님이 몰래 귀띔해주시기로는 "아직은 사실 한 분야만 파도 괜찮아요- 그 분야 하나를 팜으로서 많은 것을 얻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자신의 특화된 전문으로 만들수 있다면 :)"라시기에 초큼 한숨을 돌렸다.)

2. "문화콘텐츠학도로서의 일반 기업체 활동에 있어서의 최장점이 무엇인가"
내가 여태 경험한 그대로, 참 능력자들이 많다는 것. 선배들은 물론이거니와, 당장 내 또래에도 얼마나 굉장한 능력자들이 많은지. (일단 제일 가까이에 씨님이 있지 ... ) 그러니까 그 인맥을 잘 관리한다면 그것이 어딜가나 굉장한 나의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이 학문 특성상 이론보다는 실전 사업에 대한 연습을 많이 하게 되는데, 그 모든 것이 기획력과 응용력, 유연성을 길러 준다는 것이다.
과연 듣고 보니 그렇다. 기실 현재 우리 학교 학부에서 문화콘텐츠학이 정식 학과가 아니라서 그렇지 ... 따지고보면 어느 학과에도 결코 뒤지지 않는단 말이지.


암튼 한시간 후 다시 내 숙소에 돌아와서 또 많은 능력자분들과 대화할 수 있었다.
그 분들은 전혀 아까운 기색 없이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자기 나름의 성공의 노하우들을 전수해주셨다.
그 잠시의 새벽동안 참 많은 것을 배웠고 많은 자극을 얻었다. 막연한 안개 속에서 발밑에 올바른 방향을 향해 뻗어있는 돌들의 도드라짐을 밟은 느낌이라 표현하면 될까.

난 거의 MT 분위기를 기대하고 왔고 실제로 1박 2일의 MT 같은 느낌이었지만, 이렇게 뭔가 많이 배운 MT란 두번다시 없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암튼,
그 다음날 역시 피로에 쩐 나는 다시 반시체가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그치만 내 체력과 돈과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았던, 대단한 1박 2일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