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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디자이너다/게임하기

인간이 돌발상황에 빠졌을 때.

언제나처럼 레이시티를 2시간쯤 하고 있었다.

이제 아이템 정리나 하고 끌까 하는 생각에 창고로 들어가 아이템 정리를 하고 있는데,
어느 순간 무언가 숫자가 바뀐 느낌이 드는 것이다.

뭐였지? 하다가 문득 보니,
돈이 0이 되어 있었다.

그동안 뭐 사재기 팔아재기도 안하고
순수하게 하루 약 2시간 정도씩 접속해다가 일(?)만 해서 부지런히 모은 것이 약 380만원.
이게 한 순간에 날아간 것이다.
그 한 순간에 실수? 해킹? 버그? 갖가지 생각이 뇌 속을 헤집고 다녔다.

실수라고 생각하니, 내가 실수를 할 껀덕지가 없다.
이게 뭐 다른 게임처럼 돈을 어디다가 떨구거나 따로 보관할 수 있는 시스템도 아니고,
아예 그런걸 할 장치조차 없으니까.

해킹이라고 생각하니, 이건 또 성립이 안 된다.
내가 아이디 비번 관리 하나는 철저한 건 확실하고
더군다나 내가 거래를 하고 있던 중도 아니고, 혼자 아이템 정리나 하고 있던 중이었으니
해킹은 더더욱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럼 역시 버그라는 판단에, 버그 신고를 하려고 생각을 해보니
이런거 신고한다고, 게임 관리자 측이 돈을 줄까?
오히려 허위신고해서 돈이나 챙기려는게 아닌지 의심이나 받고선 본전도 못 땡길 수도 있겠다.

정말 이대로 이걸 다 날려 먹은거면 ...
진짜 이번엔이대로 게임을 영영 접어야 하나 생각했다.

물론 좀 거액이라곤 하나 그 돈 정도 없어도 게임은 무리 없이 충분히 즐길 수 있다.

다만 내 성격상, 게임 상에서 뭐 안 좋은 일 한번 당하면 그 게임은 보기도 싫어지곤 하니까.(옛날 퀴즈퀴즈가 그랬다. 아이큐 1000 유지하다가 한번 콱 깎아먹고 다시는 안했다)
뭐어, 게임 좀 안한다고 인생의 낙을 다 잃어버릴 나도 아니지만 ;)

어쨌든, 되든 안되든 멀쩡히 눈 뜨고 있는 앞에서 돈 사라진건 억울하니
버그신고나 해보자 해서 게임을 껐다가, 스크린샷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0된거 찍으러 다시 접속했더니 ...
돈이 다시 돌아와 있었다.


......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자시고, 그전에 걍 벙쪘다.
버엉.

아까 그 한 순간에 내가 했던
온갖 예상, 의심, 걱정, 우려, 추측, 판단 그 모든 것이 온 모공으로 빠져나가는 느낌.
이 느낌을 아시는가?

인간이 돌발상황에 빠졌을 때,
찰나의 순간에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가.

그 머릿속 CPU 및 램이 100%로 가동되는 느낌.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