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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 스트랜딩 초반부를 플레이하고 적는 플레이 후기 겸 분석
주안점( ? )
무엇이 플레이어로 하여금
시스템 냄새 풀풀 나는 서브 퀘스트를 플레이하게 만드는가?
온라인 요소를 분석에 넣으면 본격적인 사회심리학의 영역까지 건드려야 할 것 같아
일부러 배제하고 싱글 플레이 요소에 집중함
주의사항
초반 플레이에 한정된 경험
개인적 주관 대단히 강함
시작하기 전에
대충 배경 설명
근미래의 미국, 초자연적 현상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게 되었고
얼마 남지 않은 생존자들은 뿔뿔이 흩어져 고립된 채로 지하에 은둔하며 살아가고 있다.
유통망이 단절된 세계에서 ‘배달부’는 인류의 존속을 위한 핵심 직업이 되었다.
주인공 샘 포터는 죽음조차 거스르는 특이 체질 덕분에,
위협으로 가득찬 바깥에서도 비교적 자유로운(...?) 활동이 가능하여 '전설의 배달부'로서 조용히 살아가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정부의 요청으로 고립된 지역들을 중앙 네트워크에 '연결'하는 임무를 떠맡게 되고,
궁극적으로 미국 대륙 전체를 하나로 연결시키기 위한 여정을 떠나게 된다.
게임의 코어 = '배달'
데스 스트랜딩의 코어 플레이는 '전투'가 아닌 ‘배달’이다.
게임의 초반 플레이는 효율적인 경로 개척, 균형 유지, 장애물 극복을 통해 물품을 목적지까지 전달하는 행위에 집중하도록 유도한다.
전투조차도 배달 경로를 막는 장애물을 배제하기 위한 요소로 존재한다.
일반적인 액션 RPG 게임들은 흔히 '전투'가 코어의 위치에 있고, 나머지 요소를 부차적인 것으로 두는데 반해,
데스 스트랜딩은 '배달'이 코어에 해당하고 그 외 나머지는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한다.
캐릭터의 성장 역시 '배달'을 통해 이루어진다.
'배달'을 무사히 완료했을 때 받은 '좋아요'의 수가 전투 경험치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즉 '배달'은 게임의 주제 의식인 "연결"의 핵심으로,
코어 플레이의 위상을 가지는 동시에 세계를 복원하는 상징적 행위로 작동한다.
메인 탐구
부제: 데스 스트랜딩의 독특한 보상 메커니즘
보상도 없이 등 떠미는 서브 퀘스트?
많은 게임들에서 서브 퀘스트는 메인 퀘스트와는 별개로 물질적 보상(재화 / 경험치)이나 서사적 보상을 미리 뚜렷하게 제시하며,
플레이어는 그 보상을 얻겠다는 욕구를 바탕으로 퀘스트를 수행한다.

그런데 데스 스트랜딩의 서브 퀘스트(일반 의뢰 / 분실물)는
사실상 임무 목표만 보여주고 플레이어의 행동을 요구하는 식이라 불친절하기 짝이 없다.
스토리: 보통 없음
목표: 모바일 게임의 양산형 퀘스트를 방불케 함
보상: 좋아요 갯수가 보이긴 한데, 그나마도 양이 작고 귀여워서 있으나마나처럼 느껴짐
결국 플레이어는 실질적으로 보상에 대한 기대를 미뤄놓고,
도전 정신이나 봉사 정신, 탐구 정신과 같은 추상적인 동기를 바탕으로 퀘스트를 수행하게 된다.
매력적인 보상을 걸고서 어떤 행위를 하도록 만드는 것은 간단하다.
반대로 보상 없이 어떤 행위를 하게 만드는 것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데스 스트랜딩은 '이 세상에 나 말고는 할 사람이 없다'는 메시지를
플레이어에게 지속적으로 주입하여 일단 첫 퀘스트를 시작하도록 유도한다.
대가를 기대하지 않고 행한 노고에 대한 보상은, 게임 플레이에 도움이 되는 아이템인 경우도 있으나,
때로는 아예 없기도 하고, 때로는 감사하다는 메일 한 통으로 퉁치는 경우도 있다.
재미있는 점은 이런 노고 대비 하찮은(?) 보상을 줌에도 불구하고,
때로 서브 퀘스트가 상당한 심리적 만족감을 주는 경우가 있으며,
그 만족감이 플레이어를 다음 퀘스트 수행으로 이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기이한(?) 심리적 만족감은
플레이어가 이입하는 주인공 캐릭터의 특수한 설정에 일정 부분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찮은 보상을 받더라도 괜찮게 만드는 고도의 가스라이팅
일반적인 RPG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여정을 시작한다.
(일단 주인공 스스로 삶을 포기하면 게임이 시작되지 않으므로 선택의 여지가 없긴 함...)
영웅형 주인공 → 스스로의 신념과 스스로 기른 힘으로 세계를 구원하거나 정복
생존형 주인공 → 가혹한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스스로 생존의 방식을 선택하며 살아감
반면, 주인공 샘 포터의 여정은 애시당초 '타의'로 시작한다.
자기 뜻과는 무관하게 선천적으로 얻은 특성 때문에 죽음을 거스르는 존재가 됨
이 특성 때문에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도 없음
그렇다고 이것을 빌미로 스스로 영웅 노릇을 할 생각 역시 눈곱만큼도 없음
결국 붙잡힌 가족(의붓누나)을 구해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에,
미국 전역을 네트워크에 연결한다는 중차대한 임무를 '어쩔 수 없이 떠맡게 됨'
처음부터 스스로의 강한 의지와 욕구로 여정을 시작한 인물이 아니기에,
물질적인 보상이나 힘의 성장은 그에게 큰 의미가 없다.
전반적으로 스스로의 의식적 욕구에 대한 묘사가 없으며, 타의(의뢰)에 의해 떠밀리듯 움직이는 존재로 표현됨
자연스럽게 보상에 대한 기대 없이 배달 임무를 하는 것에도 당위성이 부여됨
서로 고립되어 있다는 이유로 NPC들끼리 인터랙션할 일이 매우 적고,
주인공이 접촉 공포증을 앓고 있다는 설정은 정서적 보상감이 극도로 적은 게임의 설계 자체를 합리화한다.
일반적인 게임과는 다르게 보상 피드백 자체가 철저하게 제한되어 있으며
갈수록 플레이어가 정서적 반응에 갈증을 느낄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결과적으로 주인공의 '배달'과 '연결'은 '이 세상에 정말로 필요한 것'이었기에,
영웅이 되려는 뚜렷한 의지가 없었더라도 결과적으로 세상 사람들은 그를 영웅으로 칭송하게 된다.
접촉 공포증을 앓는 주인공에게 있어 타인과의 접촉은 언제나 부정적인 것이었으나,
그를 칭송하는 사람들의 '좋아요'나 감사 편지를 통해 조금씩 타인과의 긍정적인 경험을 쌓아 나가게 된다.
이것이 주인공에게는 물질적 보상에 맞먹는 보상감으로 작용한다.
동시에 주인공에게 이입하는 플레이어 역시 상응하는 심리적 만족감을 느끼게 되며,
이것으로, '연결의 강화'라는 추상적인 보상감만으로도 계속해서 퀘스트 수행을 해나갈 수 있는 내적 동기를 얻게 된다.
그런데 어쩌다 게임 플레이에 큰 도움이 되는 아이템이라도 보상으로 나오면?
기대하지 않았던만큼 더욱 놀랍고 기쁜 마음을 갖게 됨
(완벽한 가스라이팅 구조...)
결론 및 시사점
RPG 게임의 일반적인 플레이 메커니즘이 물질적 보상감과 캐릭터의 물리적 성장의 연쇄 작용에 있다면,
데스 스트랜딩의 초반 메커니즘은 비물질적 보상감과 캐릭터의 심리적 성장에 포커싱을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이 플레이어에게 딱딱한 서브 퀘스트를 떠먹이는 효과를 발휘한다.
게임 설계에서 플레이어에게 보상 기대치를 너무 빨리 채워주는 건 “행위의 의미”를 약하게 만들 수도 있다.
데스 스트랜딩은 일부러 그 기대치를 낮게 잡아서, 플레이어 스스로 ‘왜 이 일을 하는가’에 대한 내적 이유를 생각하게 만들고, 그 자체가 몰입을 키우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이 메커니즘 자체가 워낙에 독특하고, 세계관과 캐릭터 설정에 과하게 의존하는 경향이 있으며,
무엇보다 일반적인 보상감과는 궤를 달리하고 성장 체감이 뚜렷하게 느껴지는 장치가 아니기 때문에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으며, RPG 게임에서 보편적으로 차용하기에는 명백한 한계가 있다.
그 외 잡다한 감상
메인과 서브의 배달 목표물 차이
메인 퀘스트의 배달 목표는 일반적으로 생존에 필요한 주요 자원이지만,
서브 퀘스트의 배달 목표는 수집용 피규어, 악보 등과 같이, 과거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연상시키는 경우들이 있다.
이러한 퀘스트는 단순한 물건의 배달을 넘어서, 네트워크망을 복구하는 것과 비슷하게
소유자의 정체성을 복구하고 과거와 현재의 연결을 상징하기도 한다.
우편(메일)의 역할 탐구
한번 연결된 NPC는 주기적으로 편지를 보내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친밀도가 오를 때마다 혹은 잊을만한 시기에 내 행동(배달)을 언급하며 찬사와 감사를 보낸다.
새로운 의뢰를 제공하며 재방문을 유도하기도 한다.
때로 세계관에 대한 설명 제공 및 떡밥 회수도 우편으로 하는데
녹음 등 비용이 나가는 대사 대신 우편을 통해 구구절절 하고 싶은 말과 설정을 저렴한 비용으로 전달하는 효과가 있다.
서브 퀘스트의 지향점에 대한 시사점
데스 스트랜딩은...
메인 퀘스트에서 큰 단위의 주요 거점을 연결하도록 유도하고,
서브 퀘스트에서 쉘터라는 작은 단위의 사람들을 연결하며, 파편화된 세계에서 남은 생존자들끼리의 연대의식을 강하게 만들도록 유도한다.
메인 퀘스트가 미지의 안개로 덮여있는 대륙 지도에 연결선을 그리는 과정이라면,
서브 퀘스트는 그 평면적인 지도를 '사람이 살고 있는 세계'로 입체화시키는 역할
즉 서브 퀘스트는...
단순히 NPC의 부탁을 들어주거나 부가적 서사를 전달하는 수준을 넘어,
메인 주제에 기능적으로 연결된 컨텐츠를 지향하는 것이 바람직하겠다.
엔딩 즈음에 쓰는 노트
미쳐버린 세계관과 게임성과 연출의 삼박자
모든 여정이 미니게임이다
모든 것은 최대한 많은 화물을 최대한 안전하게 잘 나르기 위한 작업이다.
등짐을 최적화하고, 가장 적합한 장비를 챙기고
가는 내내 균형을 잡고 조심조심 경사를 오르내린다.
이것도 초반 이야기고, 후반부에는 한정된 대역폭 자원 내에서 최대한 효율적으로 집라인을 깔아야 하는 게임이 된다.
하루하루 액션게임으로 벌어먹는 생존에서 갑자기 심시티 식 건설게임으로 선회하는 부분.
근데 진짜 흥미로운 건, 이 게임은 주인공 캐릭터의 성장을 정말 대놓고 안 보여준다는 거다.
일반 게임과 같은 성장, 여기엔 없다! 고 가스라이팅하는 수준으로 분위기를 조성해 놓고
새로운 지역 뚫을 때마다 찔끔찔끔 장비 하나 뚫어 주고, 찔끔찔끔 포터 능력 올려주고...
그런데도 나는 이걸 하고 있다.
처음에는 그냥 봇짐 메고 조심조심 안 넘어지게 다니면서
새로운 지역을 뚫고, 배송 의뢰 잘 하는 것 정도가 목표라면
나중에는 그놈의 카이랄 대역폭 좀 얻겠다고 캠프 5성 만들기 위해서 반복 노가다를 하고
더 나중에는 프리미엄 배송 다 받겠다고 애꿎은(?) 뮬 캠프 털어먹고
시간 제한 맞추겠다고 산꼭대기에 집라인 포인트 찾으러 덤비고
플레이어가 아주 온갖 고생을 사서 하게 만든다.
처음 한번 먹을 때는 이게 뭔 맛이여 하다가 세번 먹고 중독된 평양냉면이나 다를 바 없는 정말 이상한 게임...
그 와중에 이따금 몰입감용 연출이 미쳐버렸는데...
1.
플레이어를 갑자기 1차대전 2차대전 한가운데 밀어넣어버리기
갑분 슈팅게임ㅋㅋㅋㅋㅋㅋㅋ
그 와중에 친절하게 탄약이랑 총이랑 다 뿌려줌
2.
여태 실컷 BT한테 고생하게 만들어 놓고
자~ 이 타르 구덩이 넘어가야 하는데~ 어케 할래?
잠깐 고민했는데 BT가 우글거리는 해안가에 갔더니
"샘,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못 가는 곳이다. 알아서 신박한 방법 잘 떠올려봐라."
그래서 BT를 마구 조졌더니 무한 스폰되길래 이게 힌트구나 싶어서
가만 생각해봤다가 하나 방법이 떠오름
"BT한테 당하면 타르 구덩이로 알아서 끌려가잖아?!!!" < 정답 ㅋㅋㅋㅋㅋ
발상의 역전입니까...
그러고는 바로 갑분 플랫포머 게임...
3.
일반적인 게임은 거대 보스전 같은 거 가기 전에
상황 이러쿵저러쿵 하니까 무기랑 장비 잘 챙겨가라~ 하고 거의 팝업 메시지 수준으로 안내해주는데
이 게임은 ㅋㅋㅋㅋ 캠프 시뻘개져서 뭐여? 하고 나갔더니
갑분 힉스랑 울트라맨 거대보스전 ㅋㅋㅋㅋ
와 망함 장비 하나도 없는데 어쩔?? 하고 있었더니
"걱정 마세요! 플레이어들이 던져줍니다!"
(이거 초반부에서 챕터 끝 보스전할 때 한번 겪어보긴 했는데...)
인간 최고! 연결 최고! 우리는 하나! 혼자가 아니야! 메시지를 이런 식으로 푼다는 게
참 일본 갬성 낭낭하게 터지는 부분이라고 생각함
4.
해변으로 가라는데 그놈의 해변 어떻게 가지?
잠자고 일어나면 되나? 맨날 그러던데? 어? 안 되네?
하고 한참 엉뚱한 데로 가고 있었더니 주인공이 혼자 중얼중얼 힌트 알려줌
"아... 걸어서 못 가는데..."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 돼..."
"아 프래자일이 워프시켜 주잖음!"
"맞다맞다, 설정상 프래자일이 해변 경유한댔지" < 정답
여러분, 데스 스트랜딩이 이렇게 친절한 게임입니다^^
이거 꽤나 헤매는 사람이 많았겠지...
5.
해변에서 힉스랑 맞다이 뜨는 대목ㅋㅋㅋㅋ
이건 거의 코지마가 이거임 이거 ㅋㅋㅋ 하면서 만들었을 것 같은 느낌
힉스 쫓아다니면서 두들겨 패는 게 목표인데
파손된 화물이 막 널려 있어서 첨엔 뭐하자는 쓰레기지? 하고 생각했다가
"아 화물로 냅다 치라고요?" <정답 ㅋㅋㅋㅋㅋㅋ
6.
그러고는 갑자기 상단 체력바 UI 나오면서 갑분 대전격투게임 ㅋㅋㅋㅋㅋㅋㅋ
이거 장르를 몇개를 섞어놓은 거여 ㅋㅋㅋ
그 와중에 얻어맞으며 얼굴 뭉개지는 만화적 연출 주옥같이 들어가 있고
주인공 후달린다 싶을 때 바닥에서 체력벌레 올라오면서 깨알같이 주워먹을 수 있게 해놓고 ㅋㅋㅋㅋ
와 웃음 포인트가 몇개인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당시에는 X버튼 누르느라 웃으면서 할 상황은 못 됐지만
돌이켜보면 정말 추억보정될만한 모멘트들이었다.
보통 게임이 후반부가 될수록 주인공이 강해지고 할 수 있는 게 많아지면서 루즈해지기 마련인데,
데스 스트랜딩은 반대로 게임 후반부에
'해변'이라는 현실이 아닌 특수 공간에 주인공을 아무 것도 없이 던져놓고 게임의 장르를 바꿔버림으로서
막판까지 긴장감을 유지하게 해준다는 게... 꽤나 흠터레스팅했다.
비슷하게 현실도피를 시켜주는 파크라이3도 이 정도 느낌은 아니었다.
잘 생각해보면 이 모든 게 게임성과 연출력과 세계관의 3박자가 딱딱 맞아서 가능한 것이다.
해변에 집어넣더라도, 그냥 주먹질만 시켰다면 파크라이3랑 큰 차이가 없었을 거다.
UI부터 연출까지, 플레이 감성 자체를 완전히 뒤엎었기 때문에 다른 게임을 한다는 감각이 느껴졌던 것임.